(개인적으로 참 좋아라 하는 배우 안성기씨. 그의 연기는 언제나 전율을 일으킨다.)
글쓴이는 역사라는 과목, 아니 역사 그 자체를 좋아한다. 2차대전사를 읽으면서 화약 냄새를 느끼고, 마르틴 루터의 종교 운동을 보면 귓속에서 엄숙한, 독일어스러운 거친 듯한 목소리로 97조를 읽는 그 누군가를 느끼면서, 역사를 단순히 암기 대상이 아닌 감정이입의 대상으로 보다보니 역사 자체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한 필자가 역사책 중에서 이 역사만큼은 "역사책이 눈물을 흘린다" 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하나는 2차대전 시의 유대인 홀로코스트요, 2번째는 94년 르완다에서 있었던 르완다 내전이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가 바로 지금 당신이 본 1980년 5월 18일의 광주이다. 성균관대 부근에서 잠시 지냈던 여섯 살의 아이가 6월 항쟁 때에 멋모르고 집 바로 바깥에 돌 장난을 하러 나가다가 마신 최루탄, 그리고 그 하얀 연기에 아파하며 흘린 눈물이 지금까지 글쓴이의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것일까. 그래서인지 아직까지도 필자는 - 한총련 식의 극좌성향을 싫어하여 운동 활동은 안했지만 - 80년, 87년과 같은 우리 역사에 유독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5.18을 소재로 다룬 매체는 의외로 많은 편이다. 독립영화를 제외하더라도 94년의 "꽃잎"이 있고, 최근에는 MBC드라마 "제 5공화국"이 있다. 이미 그러한 매체들로부터 본 게 있어서 필자는 이 영화도 한계를 가진 영화가 아닐까 예상을 했다. 80년의 사건으로 미쳐버린 소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다보니 막상 5.18이 이야기의 중심에서 멀어진 영화 "꽃잎", 사건 중심으로 진행하는 사극의 한계를 보여준 "제 5공화국"의 사례를 보다 보니 이 영화도 아마 그와 같이 5.18의 겉만 살짝 핥고 끝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무엇보다 '왕의 남자'에서 메트로섹슈얼을 개척한 이준기가 다른 모습으로 나온다는 것 때문에 그 걱정이 좀 더 심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특징 - 어떤 사건이든 꼭 연애와 연결 - 을 따르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모습을 커버해 줄 수 있을 만큼 영화 자체에서 생동감을 주고 있다. 제 5공화국과 비교해 본다면, 그 드라마에서 나온 5.18 광주민주항쟁은 5월 18일 전후로 벌어진 일을 편년체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고, 사건을 중심으로 하다보니 5.18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소 뒷전으로 미뤄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는 주인공이 5.18이라는 사건에 엮이면서 벌이는 이야기들을 보여주다 보니 5.18 당시의 사람들의 냄새를 조금이나마, 아니 아주 많이 느낄 수 있게 한다. 개그 캐릭터로 등장하는 동료 택시기사, 연애질하다가 택시에 x을 닦아놓고 도망갔다가 택시기사와 친구가 되어버린 건달, 교사로서의 고민을 보여준 고등학교 교사, 한때 촉망받는 군인이었으나 전역 후 광주시청 방어전에까지 참여하며 자신의 미래를 차 버린 예비역 대령까지.... 역사책에 등장하는 "5월 24일 새벽 4시경 시민군은 xx명의 희생자를 내며 계엄군에게 항복했다." 라는 단 한마디의 문장 속에 숨겨진 사람들의 숨소리, 그것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하여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영화의 특성상 악역과 선역이 적당히 배치되어 있어야 하며, 전두환을 어설프게 등장할 경우 스토리가 자칫 막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그러한 면에서도 만족스러웠다. 보기만 해도 어그로를 엄청나게 상승시키는 - WOW(월드오브워크래프트) 식으로 말한다면.....전두환을 일리단(WOW에서 가장 센 보스) 잡는 공대의 메인 탱커(몹이 다른 파티원을 치지 못하게 몹이 죽을때까지 파티원을 대신하여 계속 얻어맞는 사람)로 세우고 나서 일리단에게 '화려한 휴가'를 보여주면 아마 일리단이 죽을때까지 전두환만 패지 않을까 싶다 - 전대갈을 등장시켜서 스토리의 균형이 깨질 우려를 덜 수 있었고, 계엄군의 강경진압을 주도한 준장이나 예비역 대령 안성기를 존경하며 계엄군의 초강경진압을 우려하는 계엄군의 대위와 같은 균형있는 인물 배치는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영화를 보면서 수많은 어설픈 멜로들을 보아도 별 눈물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 영화만큼에서는 확실히 눈물이 많이 나왔다. 학생들을 걱정하여 시위에 나가는 제자들을 막았으나, 나중에는 제자들에게 치약 - 운동권 사람들의 비기로 눈 밑에 치약을 바르면 사과탄이나 지x탄의 매캐한 연기에도 눈이 덜 아프다고 한다. 직접 발라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다 - 을 발라주면서 가슴 찡한 모습을 보여준 선생님, 그리고 광주시청 전투에서 마지막으로 자기 제자를 살리기 위해서 제자의 입을 막은채 죽어간 마지막 모습, 시민군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신부님이 마지막 광주시청 방어전에 참여하면서 "주님께 가기 위해서 왔습니다" - 초연한 모습으로 말하는 신부님의 말을 듣는 순간, 자신들이 벌인 아프간 사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도 없으면서 친미행사에는 단골로 얼굴 들이밀며 미국만세를 외치는 정치목사들에 대한 분노가 솟아올랐다. - 라는 말을 남기며 참여하는 모습, 마지막 방어전 때 죽어가는 시민군들이 '나를 잊지 마세요' 라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모습, 여주인공이 새벽에 "지금 계엄군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라고 외치면서 울먹이는 모습 등... (신부님의 대사나 선생님의 모습은 영화의 창작인 듯 싶지만, 시민군들이 죽어가는 순간에 자기 이름 이야기하면서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말하는 것이나, 새벽 4시에 트럭에 탄 채로 계엄군의 기습을 알린 당시 20대의 아가씨는 실존했던 사건임) 영화관 안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리다보니, 글쓴이도 참고 있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것도 무려 4번이나...
79년, 박정희가 죽기 직전에 당시 시민운동이 가장 심했던 마창진(마산 창원 진주)에 계엄군을 투입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마 박정희가 진짜로 마창진에 계엄군을 투입했으면 광주 시민운동 전에 대형 학살사건이 경상도에서 벌어질뻔 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박정희가 죽은 이후 전두환이 대상으로 공략한 곳은 자신의 근거지와 관계가 없고 - 전두환은 경상도 출신이다. - 개발 수준이 낮아서 경제적인 손실이 적으나 인구가 많은 곳 - 그래서 경제적으로 발전된 마창진을 제외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 그리고 눈에 잘 띄지 않아서 해외 언론등의 영향을 적게 받을 수 있는 곳. 대학이 많아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기 쉬운 곳 - 아마 전주에 대학이 많았으면 전주도 전대갈이 학살 대상지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광주처럼 큰 도시이지만 광주보다도 개발이 덜 된 도시였기에... - 바로 그의 추악한 정권욕이 만든 학살지가 바로 빛고을 광주였다. 말 그대로, 에무식스틴(M-16)의 화염으로 1주일간 빛고을답게 만든 곳. 그리고 빛고을을 피고을로 만든 곳.
영화가 끝나고 하늘을 보니 뿌옇게 찌푸린 서울의 하늘이 다시 까만 비를 뿌리고 있었다. 다시 한번 광주의 그 순간을 느끼며 슬픔을 마음으로 삭히는 때에 필자를 대신하여 울어주는 하늘이 정말 고마웠다.
다시는 권력욕에 미친 군비리의 망상 때문에 이런 일이 없기를.
다시는 시민들이 총을 들고 일어나야 할 일이 없어지기를.
다시는 우리의 자유가 더이상 제한받지 않기를.
광주. 아직 당신의 이름은 잊지 않았습니다.
역사책에서 말할 수 없는 것들.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제 다음 대에 항시 잊지않고 전하겠습니다.
제 후손들이 다시는 역사를 후퇴시키지 않도록 말이지요.
P.S> 광주민주항쟁 이후로 실의감에 빠진 광주 시민들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해태였습니다.
전라도라는 이유로 홀대받는 사람들이 많던 80년대(당시 정부 고위직만 해도 대부분 경상도가 잡았음),
가난하지만 해태라는 이름으로 뭉쳐서 타 구단과는 다른 근성을 보여준 타이거즈.
시간이 지나고, 해태도 기아로 바뀌면서...
옛날처럼 타이거즈의 승리 = 전라도 사람들의 한풀이 이라는 공식이 약해지면서
이제 최고 인기구단의 영예를 구도(球都) 부산에 넘기게 되었네요.
<해태에 대한 부가설명>
해태 자체의 연봉은 수도권 구단, 심지어 짠돌이 구단으로 유명한 OB(지금 두산)보다도 약한 편이었습니다. 또한 김성한감독의 빠따 사건으로 알 수 있듯이 가장 오랜 시간동안 해태 특유의 권위적인 분위기를 유지한 구단으로도 유명했죠. (박재홍 같은 자유로운 마인드의 선수는 버티기 어려운 구단이 해태였습니다.)
좀 더 이야기한다면, 해태가 그 당시 전국 어디서나 원정팬을 그렇게 동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옛날 전라도가 농업위주 개발지역이어서 돈을 벌러 사람들이 타지로 떠나는 일이 많아서 그랬습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돈벌며 사는 사람들이 해태가 자기 동네에서 경기한다~ 하면 3루석(원정팀석)으로 찾아가서 아주까리(해태 응원가)를 불러대다 보니 전국구 인기구단으로 발돋움한게 있답니다.
K리그에서 왜 야구와 같은 지역감정이 없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꽤 되시는데,
K리그 초기에 전라도에 있는 축구팀이 하나도 없었기에 전라도 사람들이 열광할 스포츠는 야구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전라도에 처음으로 생긴 축구팀은 지역감정이 옅어지기 시작한 1993년경에 창단한 전북 다이노스,
그리고나서 생긴 팀이 1995년경의 전남 드래곤즈 - 실제로는 광양 드래곤즈같은 느낌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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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하는 악플러들에게.
당신이 인터넷 게시판에서 슴가크리 어쩌며 낄낄거리는 것, 야동을 다운받으면서 하악하악대는 것, 뉴스 게시판에 남의 가슴을 찢는 악플을 다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만든 것은 1960년, 1980년, 1987년, 그리고 미처 적지 못한 연도의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외다. 지금 짱개 애들은 몇몇 사이트들은 보지도 못하게 막고 있고 - 특히 반정부적 사이트와 함께 야동은 엄청나게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소이다. - 정부의 뜻에 어긋나는 글을 단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처벌받는데, 지금 우리가 여기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라는 리플을 달면서도 안기부에 끌려가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이런 것들을 만든 것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외다. - 실제로 1980년대에 전두환 욕하다가 걸리면 안기부행 KTX 티켓 바로 끊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수준이었음. - 그러한 노력으로 얻은 인터넷에서의 자유를 그렇게 막 쓰지는 말길 바라오. 수많은 피와 눈물로 얻은 자유를 단지 슴가크리 하악하악~ 이란 발언과 맞바꾸겠냐 말이오.